Wednesday 3 December 2014

[이탈리아] 2000년전 화산재에 잠겨 멸망한 폼페이의 숨결

#폼페이 #달구지여행사 #로마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moon_and_james-1  

드디어 폼페이의 숨결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포스트를 쓰게되었습니다!! 
200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 화산재와 함께 멸망하게 된 그 비운의 도시! 얼마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지 정말 상상만으로도 감동의 물결이 넘실 거립니다.

저 역시 폼페이를 너무너무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또 그 사라진 도시가 어떤 곳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했기에 이번 포스트는 2편으로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포스트는 폼페이에 대한 이것저것을 적어보도록 하겠고 두번째 편에서는 제가 이용한 달구지 투어 후기에 대해 글을 써보자 합니다. 기대 되시죠? 저도 너무너무 흥분이 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흥미로운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준비 되셨나요???


 폼페이란 도시는?

주 오래오래전에 고대 로마시대때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위치한 '폼페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폼페이는 부와 성과 쾌락을 즐기던 한 부유한 도시였죠. 

이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많은 로마 귀족들과 상민들이 폼페이로 휴가를 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와 상업이 다른 도시보다 더욱더 발달했고 특히 윤락업이 그렇게 성행 했다고 합니다. (역시... 인간의 본능이란 헐헐헐).


폼페이는 놀랄만큼  완벽한 도시 계획을 바탕으로 설계가 되어진 곳이었지요. 이를 증명하는것이 완벽한 최신식 수도시설이라고 합니다. 그때 당시 이미 마을 전체를 위한 수도시설이 완비되어있어서 집집마다 생활용수를 공급할 수 있었는데, 특히 동네 주민이 공유할 수 있도로 설계된 동네 수돗가도 놓여있었드랬죠. 뿐만아니라 시민들이 모여 예술을 감상하고 반상회를 열었던 원형극장이라던지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체육관이나 사우나 등등 오늘날 갖춘 현대 시설물들이 가득 했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때 당시에도 남여존비사상때문에 도시 정중앙에 위치한 중앙홀은 오로지 남성동무들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여성동무들은 따로 안보이게 설계된 2층 계단을 통해서만 이웃동네를 왔다갔다 할수 있었다고 해요.

이 뿐만 아닙니다. 이미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마차'겠죠 그 당시에는)과 행인들이 다닐 수 있는 보도를 미리 고려하고 계획하여 도로를 제작하였구요 사창가 건물들은 마차를 타고 오시는 고갱님들과 방문객들을 위해 창문을 마차 높이로 높여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바로 호객행위를 위해서 였죠.

아주 오래된 옛날이었지만 현대사회만큼의 문영의 발전을 이룬 이 도시의 기술적, 실용적, 예술적 업적이 바로 이 폼페이라는 도시가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을 만한 이유인 것이지요. 


 폼페이는 어떻게 멸망했나? 

은 분들이 아시다 시피 폼페이는 기원전 79년 8월 24일  Mount Vesuvius(베수비오 산) 에서 터진 화산폭발로 뿜어져 나온 가스와 불순물, 화산재에 의해 완전히 잠기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폼페이 시민들에게는 물론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죠. 그때 당시 화산폭발로 분출된 가스와 화산재의 양이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을 이룰 정도로 두꺼웠으며 분출되는 화산재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였다고 합니다. 이때 마을을 뒤덮은 화산재의 높이만 25미터가 되었다고 하니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폼페이는 어떻게 발견되었나? 

페이의 발견은 지나간 시간이 말해주든 아주아주아주~~긴 이야기 이지만 간략하게 줄여서 최대한 쉽고 흥미롭게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마늘! 이탈리아 사람들도 마늘 참 좋아하는데요~~
마늘이 화산재에 그렇게 잘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늘 재배를 하기 위해 적합한 토양을 찾아 많이들 땅을 일구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폼페이의 흔적이 발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가이드님의 설명에 의한 간략설명이구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 검색을 좀 더 조사를 해보았답니다.
아시다 시피, 이 화산재에 사라진 도시에 대한 기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화산폭발이 일어나던 그 시기에 운이 좋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목숨을 구하게 된 생존자 'Pliny'의 편지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요. 그는 자신이 목격한 어마어마한 광경을 25년이 지난 후 한 편지에 상세히 기록하며 그날을 참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잘 알려주었습니다.

Pliny의 기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역사가들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이 됩니다. 그때의 기록에 의하면 사실 폼페이가 완전히 멸망한 시기는 8월이 아닌 11월 경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희생자들의 의복을 살펴보니 여름옷이 아닌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또 그 당시에 상점에서 팔고 있는 생활용품, 특히 식재료품을 보면 여름이 아닌 늦가을 경에나 팔릴법한 식자재들이 발견이 되었기 때문이죠.

뭐... 이런 저런 모든 사실을 다 접고 간략하게 줄이면, 본격적인 발굴작업은 시간이 한~~참 치난 1738년, 한 일꾼이 나폴리의 왕 Charles of Bourbon(줄여서 찰스) 의 여름 궁전을 짓기위한 건축 토대를 찾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헤르큘라니움이 발견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유적지가 발견이 되었을때도 그닥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발견이 된 이후 발굴 작업도 이루어 지지 않은채 그냥 몇십년이란 시간을 또 묻혀야 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폼페이 발견은 10년이 지난 1748년에 스페인 군이에 의해 발견이 됩니다. 그때 이후로 부터 이 사라져 버린 도시들의 본격적 발굴작업이 활성화게 됩니다.


 폼페이가 보존이 잘 된 이유

페이가 잘 보존이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 부식의 주 원인은 습도과 공기로 부터 완전 차단된 조건 탓이었죠. 25미터 높이로 수북히 쌓인 화산재가 외부로부터의 받을 수 있는 모든 영향을 완벽 차단하여 그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 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처음 발견당시만 해도 놀라울 만큼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발굴작업과 함께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 훼손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폼페이 희생자 사체는 훼손되지 않고 남게 된 것일까?

페이의 건물이나 생활양식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발굴과 동시에 발견된 희생자들의 모습이 정말 큰 쇼크였지요. 폼페이의 박물관에 전시중인 죽은 폼페이인들의 화석을 보면 희생자들의 다양한 포즈를 취한채로 죽은 희생자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평지에 곧게 뻗어 죽지를 않고 마치 시간이 그냥 멈춰버린 듯한 다양한 모양새로 한 채로 죽게 된 것일까요? 또한 화석을 살펴보면 당시 그들의 입었던 의복 역시 훼손되지 않은채로 발견이 되었는데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2010년에 밝혀진 한 연구결과에서는 그 이유에 대한 강력한 추측으로 폼페인들의 사인은 뜨거운 용암이 아닌 화산 폭발에 의한 갑작스런 고온에 의한 즉각적 질식사 그리고 사후 경직 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BBC에서 폼페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한 에딘버러 대학에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돼지고기 한 덩어리를 당시 폼페이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의 직물류와 비슷한 천으로 두른후에 화산활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엄청난 열이 발산되는 특별제작된 기계 안에 넣어보았습니다. 200도에서 250도 사이의 온도에서 약 150초 동안 열을 가한 뒤 실험을 마치고 실험물을 확인해 보았더니 실제로 돼지고기를 감싸고 있던 천이 약간 그슬리기는 했지만 완전히 타서 없어 지지는 않았으며 그 안의 내용물은 겉표면이 익어있었지만 속은 완전이 익지 않은 상태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즉, 갑작스런 고온의 열기로 인해 희생자들이 당시 그들이 입었던 의복이나 내장기간의 어떠한 훼손없이 죽었다는 사실이 실험결과 확인이 되었지요.




 폼페이 희생자들의 모형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
저 역시도 폼페이를 가기 전까지, 아니 폼페이를 가기 위해 공부를 하기 전까지 폼페이 희생자들의 모형이 단순히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본따 만든 모형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시되어 있는 모형은 100% 희생자들의 거푸집으로부터 만들어진 주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희생자들의 주물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강한 열기로 즉사한 희생자들은 그 자리에 쓰러지게 되고 하늘에서 끊이없이 떨어지는 화산재들이 층층을 이루어 죽은 사체위에 차곡히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게 되고 몸에 쌓이 화산재들이 단단한 돌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되었겠죠. 이렇게 생긴 바위 속에서 사체들의 피부가 부패하게 되어 사라지게 되지만 시체들의 뼈 속에 남아있는 미네랄이 덕분에 뼈들은 썩지 않고 거푸집 안에 남게 되었죠. 그렇게 거푸집이 만들어 지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거푸집 안에 석고 반죽을 넣어 주물을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된 것이 현재 폼페이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는 희생자들의 주물상입니다. 즉, 그 주물안에는 희생자들의 뼈가 모두 보존이 되어있는것이죠.
그러니 여러분이 폼페이가 가실 예정이라면, 이 주물상들은 2000년전 어느날, 멸망된 도시 폼페이의 안타까운 희생자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래의 이미지는 폼페이와 헤르큘레니움에서 발견된 남아있는 해골과 거푸집 앞에 남아있는 뼈를  3D엑스레이로 촬영하여 재구성한 희생자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위에 보이는 저 거대한 남성상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 바로 아래의 이미지이고 그 밑에 여성분은 헤라큘라니움에서 발견된 해골 이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모습입니다.

<출처- BBC>












 폼페이의 속설 - 폼페이가 타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건 달구지 투어 가이드님께서 설명해주신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이름하여 '타락의 폼페이'!



글 서두에서 간략하게 설명을 했지만 폼페이는 성(性) 적으로 정말 많이 타락을 했던 도시라고 합니다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폼페이가 타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졌다네요 - 그 이유는 바로 수도시설에 사용된 '납'으로 만든 수도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납중독에 걸리면 사람이 미친다고 하잖아요. 그 당시에는 그런걸 알리가 없었겠죠. 그냥 납이 흔해빠져서 시설할때 사용 했을 수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짐나 이 납으로 만든 수도관에 늘 물이 흐르고 흐르는 물 속에 납 성분이 포함되면서 사람들이 납중독에 걸렸었나봐요. 저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너무너무 신기하고 잼이있었답니다!



이렇게 오늘은 폼페이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았습니다.
정말 이 포스트를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조사를 했는지... 이렇게 끝을 내니 저도 다 뿌듯하네요.  저도 공부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한 5년 하면 전 아마도 하버드대도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ㅎㅎㅎㅎ
아무쪼록 너의 포스트가 재미 있고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가 되길 바라며, 다음 포스트에서는 달구지 폼페이 투어에 대해 더욱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께요!!! 

moon_salaryman_special-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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